송정 그림책 마을
깊고 깊은 산골이었던 송정리에 사람이 찾아든 것은 조선시대.
1623년 인조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박정예 할아버지는
노모를 모시고 한산에서 부여 쪽으로 가고 있었다.
3월인데도 추워서 눈이 내렸는데 유일하게 눈 녹은 곳이 있었다.
햇살이 환하고 따뜻해서 살아볼 만한 땅이었다.
마을 서북쪽에 뒷뫼, 서남쪽에 오산뫼, 동북쪽에 농가방,
동남쪽에 덤북산이 있고, 마을 앞쪽으로 큰 내가 흘러 두루 살기 좋은 땅.
둥글둥글 산천을 닮아 순박한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사는 마을.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큰 난리를 여러 번 치를 때도 더불어 사는 정으로 이겨냈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쯤 마을 한가운데 지은 야학당은 송정마을 자랑과 정신이다.
땅 있는 사람은 땅을 내고, 나무 있는 사람은 나무를 대고, 어떤 사람은 목수가 되어
가을 추수 끝나고 11월, 12월, 1월 석 달 동안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지었다.
배움의 열기가 후끈후끈해서 한겨울에 불을 안 때도 전혀 춥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동남쪽 덤북산에서 마을 입구 청룡까지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나무들이 울창해서 아이들은 땅을 딛지 않고 나무를 타고 날아다녔다.
깊은 산골인데도 큰 물이 있어 일제 강점기 저수지 공사를 하느라 근방에서 제일
먼저 전기가 들어오고 1970년대에는 새마을 사업을 하여 온통 돌길이었던 마을 길을 넓히며 그 돌로 곳곳에 돌담을 쌓았다.
한때 8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30여 가구.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마을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만 마을을 지킨다.
산천초목으로 돌아가기 전에 젊은이들이 살아볼 만한 마을을 이루어 보려 그 옛날 야학당을 함께 열던 그 마음으로 그림책과 함께하는 찻집을 연다.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해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모두 함께 달려들어 서로서로
격려하며 나이 칠팔십의 어르신들이 생전 처음으로 그림책을 만나고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려서 그림책을 남긴다.
송정 그림책 마을 찻집에서는 마을 어른들의 삶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
마을 어른들은 그 옛날 참으로 어려웠음에도 훈훈한 정을 나누던 시절을 기억하며,송정의 미래가 오래된 과거와 같길 기대하며, 손에 손잡고 하루하루 열정을 다하고 있다.
송정마을, 그림책과 함께 새 삶을 열다
01. 옛날 푸른 소나무가 냇둑 따라 나 있어서 푸른 용꼬리 같았답니다. 그래서 청룡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마을에 중요한 일 있으면 여기 모여 의논하고, 큰 명절에는 음식을 나눠 먹고 그네 뛰고 널뛰고 했습니다.
02.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오백 살 나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참나무라고 하는데,
어디서나 잘 자라는 나무라서 도토리를 좋아하는 다람쥐, 너구리 같은 동물들한테 고마운 나무지요.
03. 1925년에 생겨서 30년 정도 마을 교육을 맡았습니다. 가을 추수 끝나고 11월, 12월, 1월 석 달 동안 저녁마다 열렸지요.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서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송정마을의 자랑이요 정신입니다.
04.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정을 나누던 옛날처럼 만들어 보자고, 마을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찻집을 열었습니다.
차와 음식은 마을 사람들이 지은 농작물로 만들어요. 마을과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도 있습니다.
05. 차밭에서 나는 꽃과 열매로 차를 만듭니다. 옛날 원두막처럼 초가지붕에 마루를 높게 올려서 차밭의 꽃들을 둘러 보기도 좋고,
저 아래 청룡과 찻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도 있어요.
06. 아래뜸 사람들이 쓰던 우물이라 아래뜸 우물입니다. 물이 참 맑고 좋았어요.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서 물지게로 져다가 밥하고 씻고 빨래를 했습니다. 여름밤에는 우물에서 목욕도 했지요.
07. 5월에 꽃이 피고 가을에 잣이 열려서, 청설모가 아무 때나 와서 잣을 먹어요.
마을 할머니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심었다고 하니, 50살 좀 넘었지요. 한겨울에도 푸르른 모습으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어요.
08. 뒷뫼와 농가방, 덤북산이 만나는 자리에 있어서 마을을 두루 잘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농가방 넘어 이쪽 산길로 장에 갔답니다. 가마니 지고 쌀 자루, 콩 자루, 보리 자루 이고 장에 가던 길이지요.
09. 일제 시대에 짓기 시작해서 해방 후 완성했습니다. 그전에는 마차실이라는 동네였지요. 송정마을 사람들의 논밭도 물에 잠겼습니다.
저수지 가운데 산에 대고 소리 지르면 메아리처럼 울려서 울림바위, 울바우산이라고 합니다.